2008년 01월 11일
SBS스페셜 '용서'-사형제도, 연쇄 살인마 유영철을 용서하는가?

사형제도, 유영철을 용서하는가?
- SBS 스페셜 ‘용서’를 보고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생각하다.
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어둠의 경로로 본 지난 연말 방송된 SBS 스페셜 다큐 ‘용서-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?‘
2003년 10월. 유영철에 의해 노모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였던 아들을 참혹하게 살해당한 고정원씨가 유영철에게 편지를 받는 것으로 이 다큐는 시작한다. 그의 ‘용서’에 그 ‘용서’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답장을 보내온 유영철의 편지는 그 바른 글씨체가 차마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써보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, 내용 또한 그가 이런 양심적인 생각을 하는 정상인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.
집에 들어와 어머니, 아내, 아들이 누군가에 의해 둔기로 머리를 맞고, 칼로 몸통을 수십군데 찔리고 가위로 양 손목이 다 따진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살아서 ‘말’해야 했던 고정원씨는 그 편지를 덤덤히 읽으며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으로 동작대교에 섰었지만, 유영철을 용서하는 순간 ‘삶’이 다시 시작됐다고 말했다. 그의 ‘용서’란 감히 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, 정말 그의 말대로 주위에서 돌았다고 손가락질 받고 두 딸 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보통의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희 힘든 결정이었다.
또다른 피해자 유가족, 안재상씨는 고정원씨에게 극심하게 화를 내며 국가가 유영철을 살려둔다면 자신이 죽일 것이라고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, 나는 보면서 나라도 안재상씨 같을 것 같고 오히려 안재상씨의 분노가 더 이해가 되었다. 그의 아버지 안장순씨는 유영철로 인해 세아들을 잃었다. 큰 아들이 살해당하고 나서 그 충격으로 두 아들도 자살을 하고 말았다. 네 아들 중 살아남은 아들, 안재상씨는 그래서 남은 삶은 분노로 살고 있다.
이런 일이,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?
그들의 얼굴은, 그리고 그들의 삶은 너무도 우리랑 다를 바가 없는 보통의 소시민이었다. 특별히 더 나쁘게 살아온 것도 아니고 원한을 진 것도 아닌 그저 누구나 그렇듯, 젊은 날 고생해 가족을 일구고, 조금씩 그 보금자리를 겨우겨우 행복으로 메꾸어 나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. 그런 그들에게 닥친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저질렀다고는 믿기 힘든 참혹한 살인.
그들에게 시간은 2003년 이후로 멈추어버렸고, 미치지 않은 이 생이 차라리 고통이었다. 그런 상황에 고정원씨가 유영철을 용서하고 심지어 사형제도 폐지운동까지 시작했으니 그 마음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. 과연 유영철 같은 자를 죽음으로써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으로 심판할 수 있겠는가? 방송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. 거기다 유영철은 화장실 수건 걸이에 걸어놓은 시체의 신체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, 흔히 싸이코패스라고 하는 아무 동기도 없고 죄의식도 못 느끼는 자이다. 이럴 때, 우리는 그를 그 무엇으로 심판 할 수 있는가?
고정원씨가 희망여행에 참가해서 만난 분 중에, 폭탄테러로 가족을 잃은 분이 이런 말을 한다. 복수와 치유는 섞이지 않는다고. 이 말에 또 한번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. 만약 복수를 해서, 내 상처가 내 고통이 치유된다면 수천번이라도 더 복수를 하겠지만, 복수는 내 마음을 치유시킬 수 없다. 이것은 또 엄청난 개념이었다.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잃었고, 그들은 이미 내곁에 없다. 또 한번 이와 같은 고통을 겪는 가족을 만들어내는 ‘복수’라는 것이 과연, 진정한 ‘복수’가 될 수 있을까?
나는 혼란스럽다.
‘용서’로써 자신을 치유하는 ‘인간’의 위대함도
‘살인’으로써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‘인간’의 잔인함도
모두 내 깜냥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.
자료를 찾다보니, ‘추격자’라는 영화가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, ‘그 놈 목소리’처럼 범인을 잡을 목적이라면 몰라도, 이런 사건을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. 유가족들의 상처와 아픔, 그들의 가늠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생각한다면,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텐데...
결론적으로, 작년 2007년 10월, 대한민국은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되었다. 국제 엠네스티에서 부여하는 명예를 받았다고 하는데, 인류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과연 명예롭기까지 한 일인지, 혹은 사형을 계속 집행한다고 해서 또 우리는 ‘복수’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…
# by | 2008/01/11 17:09 | 트랙백(1) | 덧글(1)



